2001년 한 저술지에 논문 하나가 올라와요. ‘당신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살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문. 40년 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임은 갤로그와 같은 2차원적인 게임이었어요. 그러다 20년 후 스타크래프트가 나오고 지금은 엄청난 그래픽의 게임들, 그리고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는 VR까지 나왔죠. 우리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이에요. 40년은 눈 깜짝할 사이죠. 그렇다면 천 년 후, 만 년 후, 1억 년 후에 이 시뮬레이션은 어떻게 될까요?
미래에 기술의 발전 속도가 지금의 백분의 1로 아주 느려진다고 하더라도 기술이 계속 발전하기만 한다면 ‘언젠가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가상 세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 동의하시나요?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뇌의 뉴런 하나하나까지 모두 구현된 가상 속 캐릭터는 자신들의 세상이 진짜라고 느낄 것이고 그들이 사는 가상의 세계에서도 과학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술 또한 언젠가 그들의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한 번 가상 세계를 만들면 그 가상 속 세계에서도 또 가상의 세계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리고 그 안에서도 또 가상이 만들어지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가상의 우주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이미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까요? 우리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일론머스크는 99.999%의 확률로 이 세상은 시뮬레이션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그가 99.999%의 확신을 갖고 있어서 말한 게 아니에요.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존재하는 건 확실한데 그 무수히 많은 시뮬레이션에서 시뮬레이션이 아닌 진짜 현실은 단 하나밖에 없을 테니까 10억 개의 세상이 있다면 그 중 하나만이 진짜일 테니까요. 그래서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 아닐 가능성이 10억 분의 1이라고 말한 겁니다.
이 논문의 저자 닉 보스트롬은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시뮬레이션을 구현할 정도의 기술을 갖게 되기 전에 핵 전쟁이든 질병이든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재앙으로 인류가 멸종하여 가상 세계를 만들지 못하거나 시뮬레이션을 만들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뮬레이션을 만들지 않거나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거나죠. 일론머스크는 오히려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길 바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이게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면 우린 지금 멸종의 길로 가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미래의 인간들이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도 시뮬레이션을 돌리지 않을 것 같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차라리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길 바라는 게 더 낫다는 거죠.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는 건 증명도 할 수 없고 반증도 할 수 없지만 재미있는 게 하나 있죠. 양자역학의 이중 슬릿 실험에 따르면, 우리가 관측하기 전 파동이었던 전자는 관측하는 순간 파동이 붕괴하고 입자가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우리가 배틀그라운드나 GTA와 같은 현실과 비슷한 환경을 구현해 놓은 게임을 할 때 우리는 캐릭터를 조종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어떤 방향을 바라보든 물체가 보이고 세상이 보이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그 세상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게임 캐릭터가 보지 않는 뒤 방향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요. 게임에서는 미리 세상을 구현해 놓지 않는 거죠. 고용량의 게임을 효율적으로 돌리기 위해 게임 캐릭터가 보지 않는 공간은 미리 만들어 놓지 않다가 게임 캐릭터가 관측하는 순간 실체가 나타나도록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에요. 마치 파동이었던 전자가 관측하는 순간 입자가 되는 것처럼요.
우리의 우주에는 바뀌지 않는 절대 법칙이 있어요. 그 어떤 물질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것이죠. 이건 우주에 존재하는 제한 속도와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무리 우리의 우주선이 빨라져도 우리 은하 바깥의 은하는 갈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기 은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는 138억년 전 빅뱅이 터진 걸 알고 있죠. 그러나 저 은하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138억년 전 그 곳에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럼에도 우리가 저기에 은하가 있고 138억년 전 빅뱅이 일어났다고 믿는 이유는 저기 은하가 존재하고 과거에 빅뱅이 일어났다는 정보가 지금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갖고 있는 건 정보, 이것 하나 뿐입니다. ‘인포메이션(Information)’의 저자 제임스 글릭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주의 궁극적인 본질은 입자가 아니라 정보다.”
그런데 아까 양자역학의 이중슬릿 실험에서 말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어요. 실험에서 파동이었던 전자가 관측하면 입자가 된다고 했는데 우리가 직접 관측을 하지 않아도 전자가 두 슬릿 중 어떤 슬릿을 지나갔는지 우리가 알 수 있으면 그 전자는 파동이 아니라, 입자가 되어 나타나요. 그러니까 하나의 슬릿에 산소 입자가 같은 것을 놓고 전자가 지나가고 나서 산소 입자들에 남은 흔적을 통해 전자가 어떤 슬릿을 통과했는 지 나중에 우리가 확인할 수 있으면 전자는 파동이 아니라 입자가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직접 전자를 관측했느냐, 아니냐가 아니에요. 진짜 중요한 건 이들에 대한 정보를 우리가 알 수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전자가 파동이 되느냐, 입자가 되느냐는 우리가 슬릿에 산소 입자를 놓았을 때 이미 결정된 것이죠. 이를 두고 이론물리학자 존 휠러는 이렇게 말했어요.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
이 세상은 정말 정보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정보가 우리가 사는 이곳의 유일한 실체일까요? 성경에서는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 세상을 만든 신은 정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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