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데카르트 명제에 대한 과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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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의 완벽한 진리

데카르트는 진리를 찾기 위해 평생을 고민해왔던 사람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완벽한 진리는 뭘까요? 사람의 감각은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감각은 차가운 게 아주 차가우면 뜨겁다고 하기도 하고 뜨거운 것을 반대로 차갑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리를 알 수 있을까요? 과학에서 진리는 1+1은 2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철학에서도 변하지 않는 완벽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걸 이용해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데카르트는 정말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과학에 의하면 데카르트는 틀렸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믿는 이 생각도 우린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뇌로 생각합니다. 수많은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이 뇌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소통합니다. 원자들이 원자들을 보내며 원자들과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이 움직임을 과연 우리가 통제하고 있을까요?

답을 미리 알 수 있다

1979년 미국의 심리학자 벤자민 리벳은 아주 유명한 실험을 합니다. 연구원들은 실험대상자의 머리에 전극을 연결하고 자신이 손목을 굽히고 싶을 때 손목을 굽혀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손목을 굽히기로 결정한 순간과 실제로 손목 근육이 움직인 순간을 측정했습니다. 그들이 손목을 굽히기로 결정을 내려 근육을 움직이기까지 약 0.15초의 시간이 걸렸는데 놀라운 건 그들의 뇌에서는 0.5초 전에 이미 움직임이 나타난 것입니다. 내가 아닌 무언가가 먼저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로부터 29년 후 2008년에 특이한 실험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좀 더 정밀하게 실험을 한 것인데 이번엔 실험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의 선택지를 주었습니다. 왼쪽 버튼 하나와 오른쪽 버튼 하나 이 두 버튼 중 누르고 싶은 버튼을 마음대로 눌러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그들이 버튼 누르기 7초에서 10초 전에 그들이 어떤 버튼을 누를지 미리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경악스러운 결과에 이어 2013년 실험에서는 실험 대상자가 머릿속으로 계산한 수의 답을 4초 전에 알 수 있었고 가장 최근인 2019년 실험에서는 실험 참가자에게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머릿속으로 하나의 그림을 선택해 보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머릿속으로 그림을 선택하기 11초 전에 그들이 어떤 그림을 선택할 것인지 미리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린 정말 생각이란 걸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심장이 뛰는 것처럼 우리 뇌도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아무도 ‘나는 심장을 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나는 혈액순환 한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린 왜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해왔던 걸까요? 우리의 몸은 뇌의 전기 신호를 받아 움직입니다. 그래서 왼손을 들어 올리는 동작과 관련된 뇌 부위를 자극하면 그 사람의 왼손을 들어 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한 실험에서 연구원들은 실험 참가자들의 뇌의 부위를 몰래 자극해 왼손을 들어 올리게 한 후 시침을 뚝 떼며 그들에게 왼손을 왜 들어 올렸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들고 싶어서 들었다.” “가려워서 들었다.” “무슨 생각이 나서 들었다.” 이미 일어난 일에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연구를 마친 리벳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자유는 뇌에서 이미 일어난 일인 것 같다”

데카르트의 ‘나’라는 오류

그러나 데카르트의 ‘나는 고로 존재한다’ 이 문장의 오류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이 문장에 틀린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게 틀렸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나를 설명해봅시다. 나는 누구인가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모든 표현은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존재해야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면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건 상대적이니까. 뉴턴과 갈릴레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주의 배경은 고정되어 있고 물체가 이 방향, 저 방향 이 정도의 속력을 갖고 움직입니다. 그런데 수백 년 후 아인슈타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물체가 없으면 그 물체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속력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물체가 존재할 때만 방향이 있고 속력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물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 물체의 속력도 방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건 상대적입니다. 이건 물리학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나를 설명할 때도 똑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으면 나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때 나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면 나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요?

서로를 치고 받고 때리며 상대를 쓰러트려야 이기는 종합격투기보다 상대 선수를 더 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스포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티비쇼에서 격투기계의 악동 코너 맥그리거가 상대 선수를 적으로 묘사하는 영상을 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이런 거 보기 싫어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우린 모두 경쟁자라는 거예요. 전 그들을 존경합니다.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해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 상대를 주먹으로 쓰러트릴지언정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파이터가 있기 때문에 나라는 파이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파이터들이 있어야 나도 파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없으면 나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뭘까요?

테세우스 배의 역설

테세우스 배의 역설이라고 들어봤을 것입니다. 미노타우르스라는 괴물을 죽이고 아테네로 귀환한 테세우스. 아테네인들은 그가 탔던 기념비적인 이 배를 수백 년 동안 관리하며 보존합니다. 그들은 배의 나무판자가 썩으면 새로운 판자로 교체하고 또 다른 판자가 썩으면 다시 새것으로 교체하면서 계속 보존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계속 낡은 판자를 새로운 판자로 교체하다 보면 어느 순간 원래 배를 만들었던 판자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테세우스의 배에서 떼어낸 낡은 판자로 다시 다른 자리에서 똑같은 배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이 두 배 중 어떤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것인가요?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는 이 유명한 역설은 관점을 바꾸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모두 나무판자일 뿐이고 이렇게 나무판자를 모아 놓은 것에 우리가 테세우스의 배라는 가상의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테세우스의 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더 어려운 문제를 풀어봅시다. 여기에 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의 몸은 4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이 세포들은 낡으면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로 교체됩니다. 위산 공격을 받는 위벽 세포는 2, 3일에 한 번 몸의 보호막 역할을 하는 피부 세포는 2~3주에 한 번씩 교체됩니다. 이렇게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가 다 교체되기까지 약 7년이 걸립니다. 7년마다 완전히 다른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7년 전 몸과 지금의 몸을 만드는 재료 중 같은 재료는 하나도 없습니다. 테세우스의 배를 이룬 나무판자가 모두 교체된 것처럼 나를 이룬 세포도 모두 교체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나를 나라고 믿을까요? 내가 이 세포들에 가상의 의미를 부여한 걸까요?

어린 아이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재밌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 재범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 엄마가 아이스크림과 사탕 중 뭐가 더 좋냐고 물어본다면 이 아이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재범이는 아이스크림이 더 좋아요.” 이 아이는 자신을 나라고 부를 줄 모릅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자신을 사람들이 재범이라고 부르니까 ‘아, 이게 재범인가보다’ 하고 재범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 그랬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나’라는 개념은 처음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1500년까지 2천 년 동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이 되어버릴 정도로 오래된 사람들이 했던 말을 인류는 아무런 의심 없이 2천 년 동안 믿은 것입니다. 그러다 1543년 처음으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2천 년 동안 아무도 의심하지 않던 것을 의심하게 되었을까요? 이때가 바로 르네상스였습니다. 신을 그리던 화가가 인간을 그리고 신을 쓰던 작가는 인간을 쓰고 신을 표현하던 시인이 인간을 표현하기 시작한 대격변의 시기입니다. 세상을 더 이상 신의 눈으로 보지 않게 되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신이라는 가상을 내려놓고 지구가 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나라는 가상을 내려놓으면 어떤 게 보일지 모릅니다. 우리에겐 많은 가르침을 준 성인군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명상을 좋아했습니다. 명상을 왜 하는지 아는가요? 명상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심장이 뛰는 것처럼 뇌가 뛰는 걸 멈추는 건 불가능합니다. 명상은 생각이라는 걸 한 발짝 뒤에서 제3자가 되어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부 세상과 이 몸뚱아리를 경계 짓던 나라는 가상이 사라지고 경계를 짓지 않는 의식만 남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내가 무한하다라는 것을 느끼고 우주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애를 썼던 적 있는가요? 나를 설명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한 적 있는가요?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에게 나를 설명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말로 나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말은 말이니까.
달을 가르킨 손가락이 달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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