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라 패밀리’의 김태환은 저쪽에서 걸어오기만 해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웃음을 짓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강한 임팩트의 외모에 그 천연덕스러운 익살. 남을 웃기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뼈그맨.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아픔과 시련은 있었습니다. ‘저보다 가난했던 사람은 없었어요’ 하던,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레전드로 꼽히는‘나 몰라 패밀리’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나 몰라 패밀리’ 개그 짤 때가‘신들렸다’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아요. 이게 웃기냐며 아홉 번 까였어요. 모두 다 의심을 했죠. 근데 그때의 저희의 스승 컬투 형님들이‘이게 히트가 안 되면 컬투가‘웃찾사’를2년 더 하겠다. 우리 한 번 믿어주고 한 번 올려 주세요”라고 했어요. 태균이 형이 처음에 받아 주는 역할을 해주셨어요. “내가 출연을 할 테니까, 얘네 올려줘.” 이렇게 된 거예요.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새 코너 녹화는 맨 마지막에 하는데 두 시간 반봤으니까 관객들도(진이 빠져서) 심드렁하게 봐요. 근데 저희가 딱하니까 사람들이 완전 미친 듯이 좋아하는 거예요. 저희 무대에서 울었어요. 컬투 형님들도 울었어. 그 다음 날에 컬투 형들이 지방 공연이 있었어요. 그래서 공연 끝나자마자 내려가야 하는데 “나 못 내려가. 횟집으로 모여.” 술 먹으면서 한6명이 울면서 술 먹었어요.

어린 시절, 어려웠던 가정 형편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제가 죽을 병도 있었거든요. 희귀병인데 충치가 잇몸으로 안 가고 턱뼈로 바로 가서 썩는 합병증 같은 게 생겼어요. 골반뼈를 턱뼈로 대체하는 수술을 했죠. 엄마가 그거를 뒷바라지 다 하다 보니까 제가 효자일 수밖에 없어요. 집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취업을 빨리 나가기 위해서 상고를 갔어요. 형이 대학 가는데 나도 대학을 가면 우리 엄마는 진짜 죽어버릴 것 같은 거예요. 고등학생 때, 취업을 해서 주방에서 일했죠.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의 부담을 좀 줄여줘야겠다는 생각을 옛날부터 했던 거 같아요.

방송 활동은 못 본 거 같아요.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저희가 공연에 젖었던 것 같아요. (공연장에) 그냥 술 먹고 몰래 들어와서 안 좋은 생각을 하신 분이 있었어요. 제가 그때 폴 댄스도 하고 있었거든요. 나이 좀 있는 애가 검은색 속바지 하나만 입고 봉을 타고 있는 거지. 정말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나도 이게 끝이 아니구나. 이러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셨어요.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공연이 끝났는데 햄버거가 한40개 온 거예요. 거기에 그런 내용의 손 편지가 있더라고요. “인생을 포기할까도 생각을 했는데 공연을 보고 좀 많은 걸 깨우쳤습니다. 정말 오늘 좋은 공연 감사합니다.” 그런 거에서 막 저희가 좀 젖은 거죠.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공연을 하면서 제가 정말 바뀌었어요. ‘웃기기만 해서는 이 사람이 다시 우리 공연장을 찾지는 않는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탬버린도 배우고, 캐스터네츠도 배우고, 지금 가야금을 배우고 있고 관객들이 봤을 때 ‘나를 위해 저걸 배웠구나’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야 쟤는 진짜 애썼다.” 이런 거라도 줘야겠다는 것 때문에 완전히 제 삶이 바뀌었거든요.

영상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드려요.

출처 – ‘근황올림픽’ 유튜브.

저희 항상 열심히 살고 있고요. 바이러스가 종식이 될 때 저희가 가장 자부하는 ‘핫쇼’라는 공연.. 여러분들, 꼭 와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공연을 하면서 제가 정말 바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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